이젠 더이상 여유가 없다. 마이클 큰 형님이 가신 것이 다시 블로그와 인터넷에 나를 데려왔으나,

난. 꼭. 잘. 봐. 야. 한. 다.

이제 차안대라도 차고 책과 컴퓨터(그런 시험이다-_-;)에 붙어있어야겠다. 인터넷 선도 연결 안 된 컴으로만.

시험 후에는 폭발하듯이 이런저런 생각을 잘 정리해서 블로그 관리 좀 해야겠다.

이상하게 시험이 있을 때는 뉴스도 재미있다. 다른 것에 정신 파는 것-_-; 은 참으로 강한 유혹이다.

허벅지라도 찔러가며 공부해야겠다. 그래야할 시간.

자 그럼 전투모드. 이기고 돌아오겠다.

Mr. TExt  합격, 그 영광의 순간까지...

근데 뭐가 이리 촌스러워. 이해해주길-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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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Joseph Jackson 사망 관련 기사(Click)>



Michael Joseph Jackson

1958년 8월 29일 (미국) - 2009년 6월 25일

그가 갔다. 점점 한 시대가 끝나가는 것 같다. 더이상 팝스타, 가수는 하나의 상징이라기
보다 자본을 흡수하는 블랙홀로, 만들어지는 것, 강요되는 것으로 변해가고 있다.
하나의 가수가 많은 이야기와 멜로디를 들려주기 보다 가수의 모든 것이 Hook Song이라는
이른바 'Hot Trend' 에 맞춰 '세뇌-_-;' 를 시키기 위해 줄을 서는 것 같은 요즈음이다.

다시 그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는 데인져러스(Dangerous) 앨범의 강렬함으로 나의
성장기를 때렸다. 그의 음악은 항상 CF나 방송 이곳저곳에서 만날 수 있었고, 황제라는
그의 수식어를 언론은 충실히 우리에게 교육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교육에
반발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그는 '퍼포먼스, 무대 연출 - 뭐 연출은 어시스트가 있었다
하더라도' 의 '전설' 이었다. 공공연히 국내 댄스 가수들이 존경한다, 그의 공연을
참조한다고 할 정도로 그는 '공연의 화신' 이었다. 그가 종종 앨범 커버 이미지나
광고에 썼던 자신의 거대한 입상처럼 그는 '거인' 이었다. 그의 절정기였던 80년대부터
주욱.

물론 그는 Jackson 5 때부터 스타였고, 훌륭한 보컬리스트였다. 물론 상당한 시간적인
간격을 두고 접한 것이나, "Ben" 을 부르던 그의 청명한 목소리는 시대를 넘어
나 개인에게도 젖어드는 감명으로 찾아왔다. 그의 유년기를 생각하면 솔직히 슬프다.
너무도 빛나는, 시작이 매우 흥겨웠던 그의 성장기였다.
(그의 Jackson 5 시절 곡들은 아주 명곡이며 대부분 흥겨운 넘버로서 지금도 많은 영화나
방송 곳곳에서 순간순간을 빛내고 있다. 앞으로는 더욱 그러겠지)


 [출처: http://c.ask.nate.com/imgs/knsi.tsp/1164373/1/HIStory.jpg]


어찌 보면 그의 정점 또한 여러 번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굴곡이 많았던 그의 인생이였다.
뭐 많은 사람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전 세계적인 영향력과 그야말로 요즘말로
'후덜덜' 했던 그의 '포스' 를 볼 수 있었던 시기는 역시 "Dangerous(1991)" 가 아닐까
한다. 물론 그동안 "Thriller" 나 "Bad" 등 세다가 지칠 정도로 많은 명곡들이 있었지만
풋볼 경기장을 카드 섹션으로 꽉 채워버리는 93년 슈퍼볼 해프타임쇼의 감동이 참으로
많은 것을 말해주지 않나 싶다. 참으로 지치지도 않고 명곡이 쏟아져 나왔던, 그리고
세계를 음악으로 흔들고, 하나로 묶기도 했던 그의 앨범 "Dangerous" 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그의 말년에 대해서는 참으로 씁쓸한 기분을 금하기 어렵다. 물론 그러한 '소재' 가
필요한, 그게 밥줄일 언론이 무참하게 그의 드러나야할 사실, 드러나지 않아야할 사실,
그렇지 '않았던' 사실을 드러냈지만 (미국 언론, 특히 황색지의 대표적 호구, 봉은 "마이클"
과 "브리트니" 가 아닌가 한다) 어쨌든 그의 말로는 '황제' 라는 수식어가 오히려 비극적일
정도로 우울했다.

사실 나 또한 이런저런 이야기와 즐겨듣는 음악이 '마이클의 팝' 보다는 더 검은색이었던
(그의 백반증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_-; 그리고 병에 대해서 농담하는 것이 그리 똑똑하고
재치있는 것 같지는 않다. 솔직히 재수없다)
'상대적인 흑인음악 - Soul/R&B, Neo Soul, HipHop' 으로 옮겨가면서 그는 상당히 먼 곳으로
멀어져갔다. 특히 아동 성추행이라는 개인적으로 혐오하는 범죄에 대해 그가 '피소' 한 것은
나의 그에 대한 신화에 가까울 전설의 기억 영역에 심각한 균열과 붕괴를 가져왔다.

어찌 되었든 2000년을 넘어오면서 그의 음악은 더이상 나에게 크게 의미가 있지 않았다.
그가 '추한 미국인' 으로 미국 내에서 조롱거리가 될수록 더욱 그랬다. 그는 화석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맞이한 그의 사망 소식. 안타깝지만 죽음은 쇄신과 정화를 가져온다. 이미 우리나라는
한 번 겪었다. '죽어서 영웅이 되거나, 오래 살아서 악당이 되거나...' 그의 성형과 성추행
혐의로 그를 쪼아대며 생활을 이어나가던 언론은 다시 그의 죽음에 대한 '신화화' 로
좋은 소재를 얻는다. 물론 좋은 언론, 그의 죽음에 대한 좋은 추도사를 하는 언론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항상 언론에게 좋은 소재였다. 비극적인 의미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정리해서 한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내 안에 있는 그에 대한 상념을
어느 정도는 내놓은 것 같다. Rest in Peace, Michael Joseph Jackson.

당신의 노래는 나의 기억 속에, 나의 목소리에, 67억의 목소리와 기억 속에 남아서
이어질 것입니다.

Heal The World 는 그런 선율이 담긴 시(詩)이니까요. 편히 쉬소서.

Mr. TExt 090627

P.S. 어떤 좋은 블로거께서 다음과 같은 영상을 제공하셨다. 감사의 마음을 먼저 전하며 93년 당시의
그 현장의 감명깊음을 함께 되새겨 보았으면 좋겠다. 그에 대해 좋은 것만 추억하고 싶다. 고통 없는 곳에서
행복하기를.

<93년 슈퍼볼 해프타임쇼 "Heal The World" 영상 - Challenge Everything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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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한 개가 있다. 완벽하게 박살을 내고 긍지있게 끝낸 후에 다시 블로그로 돌아와야겠다.

굳이 블로그에 쓰는 이유는 당연히 컴퓨터를 켜면 블로그를 볼 것이기에 '경각심' 을 위한 맹세의 흔적...
다짐의 흔적...뭐 그런 거다.

촌스럽지만 잘 보고 싶어서 해본다. 시험 후에 근래에 괜찮게 봤던 영화 "노토리어스 (Notorious, 2009)"
에 대해 다뤄보고 싶다.

I'll be back. (아놀드 캘리포니아 주지사 톤으로)

Mr. TExt  09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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